기관소개
Introduction
문학의 영도(零度)를
서울에 긋겠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전쟁과 폭력과 혐오로 얼룩져 신음하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와 생태, 자연의 파괴는 서서히 진행되어 체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인 대 만인의 쟁투는 인간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냄으로써 우리 삶의 뿌리를 직접 흔들고 있습니다.
이 모든 비인간적, 반공동체적 씨앗은 소위 민족, 국가, 종교, 인종, 지역, 성별, 나이로 갈라진 현대 인간 문명의 그늘 속에서 배태된 것입니다. 문학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신념이 절실합니다. 문학이 있는 한 인간은 인간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문학은 우리를 존재와 신과 자연 속으로 이끌고 갑니다. 이에 사단법인 서울문학관홀은 비상한 각오와 간절한 소망을 품고 새로운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동안 우리 문학, 우리 문화예술은 봉건적 질서와 비주체적 식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민족, 국민, 저항, 민중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세계문학의 변방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찍이 대문호 괴테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문학으로서 <세계문학(Weltliteratur)>의 이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는 여러 나라가 배타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이야기하며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평화가 오리라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경쟁 없는 국제 관계는 허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문학은 세계시장과 연결돼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구축된 국제적인 문학 관계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문화예술에서도 전 지구적인 갈등과 경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직시하며 우리는 보다 분명한 상상력을 발휘하고자 합니다. 근대 ‘문학적 시간’은 늘 유럽 중심이었습니다. 이 고유한 시간은 세계 표준이 되어 지금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준이 되는 시간 즉, 문학적 근대성은 결코 선험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습니다. 문학의 영도(零度)는 구성된 것이며 만든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인 시간으로 대체할 수도 없습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입니다. 어떻게 문학의 자오선을 움직이느냐에 달렸습니다. 1930년대 세계문학의 주변부였던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 오늘날 통합된 문학 중심부로 자리하고 있는 것을 상기하며, 더 멀리는 아일랜드 문학의 대표 제임스 조이스와 사뮈엘 베케트의 미학적 전복을 푯대 삼겠습니다.